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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거주불능 지구(희망편-1)Read | Write/NTech 2023. 2. 28. 07:40
주변 사람들이 기후 위기의 위험을 경고하면 왜 유난 떠냐는 식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무지와 무관심 또는 안일함으로 현재 느끼는 불안을 공감받지도 지지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기후위기를 제게 알려준 지인에게 공감과 지지를 해주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기후 우울을 겪는 제 지인 같은 사람들을 탄광 속 카나리아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카나리아, 토끼 같은 동물을 감시종이라고 합니다.
카나리아는 대사가 빨라 유독가스에 민감하기 때문에 광부들은 카나리아가 울지 않거나 쓰러지면
탈출하는 방식으로 생존율을 높였습니다. 유독가스 센서인 셈이죠.
갱도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르지만 유독가스를 먼저 감지한 카나리아는 가장 먼저 고통받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전자식 센서를 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대신 탄광의 카나리아는 이야기로 전해졌습니다. 사람이나 다른 대상으로 비유되죠.
그래서 오늘날 제 지인 같은 사람을 탄광의 카나리아로 비유하곤 합니다.
세상에 사람들은 다양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
가끔은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다르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치과를 갈 때 제가 느끼는 불안과 7살 조카가 느끼는 불안은 정도가 다를 것입니다.
30분만 더 자고 싶은 아들과 더 늦으면 지각이란 것을 예상한 어머니의 답답함도 다를 것입니다.
가까운 가족사이, 친한 친구사이에서도 많이 다릅니다.
하물며 세상에 수많은 다양한 관계와 역할이 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을 경험을 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을 몇몇 그룹으로 사람의 노멀 한 기질을 묶을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신체건강과 환경에 따라 바뀝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정도도 다릅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은 이것을 두고 '사람마다 감정의 눈금이 다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상의 1명 이상의 여러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모를 수 있습니다.
알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습니다.
공감하지 못하고 무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지인처럼 미래의 위험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세상의 1명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연대합니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함께 목소리를 냅니다.
우리는 여기에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저자는 '기후위기의 책임은 특정 집단이나 인물이 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2050 거주불능 지구(희망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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