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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양식-앙드레지드Read | Write/NTech 2022. 9. 4. 20:22
청춘―사람들은 그것을 한때밖에 갖지 못하며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그것을 회상할 뿐.
흘러 지나가는 물은 앞으로도 수많은 벌판들을 적셔줄 것이고 맑은 입술들이 거기서 갈증을 끄고 있다.
나의 쾌락의 외형들, 너희들은 물처럼 흘러갈 것이다. 만약에 다시 이곳에 물이 흐르게 된다면 영구히 변함없는 서늘한 맛을 가져다주기 위해서이기를. 강물의 끊임없는 서늘한 맛이여, 시냇물의 끝없는 용솟음이여, 너희들은 예전에 내가 손을 담갔던 그 약간의 붙잡힌 물, 쓰고 나면 서늘한 맛이 없어져버리고 마는 그러한 물이 아니다. 붙잡힌 물, 너희들은 인간의 예지와도 같다.
인간의 예지, 너희들은 강물의 끊임없는 서늘한 맛을 갖지 못하였다.나의 청춘은 참으로 암담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후회한다.
나는 맛보지 않았다, 땅의 소금도, 짠맛을 지닌 바다의 소금도. 나는 내가 땅의 소금이라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맛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바다의 소금은 그 맛을 잃지 아니한다.
그러나 나의 입술은 그 맛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늙어버렸다.
그대의 넋이 미소할 때에 그대의 기쁨을 만족시켜라
그대의 입술이 입 맞추기 알맞게 아름다울 때,
그리고 그대의 포옹이 즐거울 때에 그대의 사랑의 욕망을 만족시켜라.
왜냐하면 그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일들은 거기에 있었다. 그 무게에 가지는 휘어 이미 지쳤다. 나의 입은 거기에 있었고 욕망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나의 입은 닫힌 채로 있었으며, 나의 손은 기도를 위해서 모아져 있었던 까닭에 벌려질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영혼과 육신은 절망적으로 목말라 있었다. 시간은 이미 절망적으로 지나가버렸다.
(그것이 정말이란 말인가, 정말이란 말인가, 슐라미트여?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건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너는 나를 찾았건만 가까이 오는 네 발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다.)나의 욕망은 내가 좀 더 용감하기를 바란다
―그렇다, 오늘날 내가 무엇이든 후회한다면 그것은 많은 과일들을,
네가 나에게 내밀어준 과일들,
우리들에게 자양을 주는 사랑의 신(神),
그것들을 내가 깨물어보지도 않고 썩혀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이다―복음서 속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읽어주던 바에 의하면,
오늘날 갖지 아니한 것은 장차 백 배로 되어 도로 찾게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아아! 나의 욕망이 껴안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재물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왜냐하면 내가 이미 알게 된 쾌락만 하더라도, 조금만 더하였더라면 그것을 맛볼 수는 없게 되었으리만큼 강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인광(燐光)을 인(燐)에서 뗄 수 없듯이
우리들의 행위는 우리들과 연결되어 있다.
행위가 우리들에게 찬연한 빛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오직 우리를 태움으로써만 이룰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나는 바란다,
여기서는 행복이 죽음 위에 피는 꽃과도 같기를마치 하루가 거기에 죽어가기라도 하듯이 저녁을 바라보라.
그리고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기라도 하듯이 아침을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미르틸, 너는 알게 될 것이다.
순간의 현존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왜냐하면 우리들 생의 각 순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과 바꿔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오직 그것에만 전심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미르틸, 네가 바라기만 한다면, 네가 만약에 안다면,
이 순간에 너는 아내도 자식도 잊어버리고 지상에서 홀로 신 앞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들을 생각하고, 너의 모든 과거, 사랑,
지상의 모든 일을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난다는 듯이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다.
나로 말하면 나의 모든 사랑은 순간마다 새로운 경이를 준비하여 너를 기다린다.
나는 언제나 그 사랑을 알고 있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사랑이다.
미르틸, 신이 갖추는 모든 형태를 너는 생각도 못 하고 있다.
그중의 한 형태만을 너무 바라보고 그것에 심취한 나머지 장님이 되어버리고 만다.
너의 숭배가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괴롭힌다.
너의 숭배가 좀 더 사방으로 퍼진 것이었으면 한다.
닫혀 있는 모든 문 뒤에 신은 있는 것이다.
신의 모든 형태는 사랑할 만한 것이며, 그리고 모든 것이 신의 형태인 것이다.”같이 읽기
Q1. 각 순간순간을 사랑하였나요. 그런 순간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지상의 양식의 느낌을 살려 '표현'해주세요.
Q2. 지상의 양식에는 다양한 맛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당신이 맛보고 싶은 3가지와 그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Q3. 삶에는 쾌락이 있는 반면 욕망에 대한 갈증, 괴로움, 외로움, 고닮픔이 있습니다.
그것에 관한 경험을 들려주세요.아래는 제 부끄러운 글입니다. 같이 읽기를 원하시면 댓글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더보기성경에 하늘의 양식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경건한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는 등 종교적인 활동
그것이 신앙 생활을 더욱 탄탄히 하는 신앙의 바탕이기 때문에 하늘의 양식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지상의 양식은 경험과 즐거움 쾌락에 관한 책인 듯했습니다. 얼핏 쾌락주의, 감각주의?
기존 도덕이라는 울타리에서 자유로워지기를 권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정신에는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있다고 하는데쉽게 말하자면
경험하는 자아는 현재 자신이 느끼는 느낌을 만끽하는 쾌락주의자
기억하는 자아는 사색하고 후회하고 평가하는 관찰자로 비유합니다.(또는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조연-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경험하는 자아에서는 즐겁기 쉽습니다.인생의 행복을 바란다면 경험하는 자아를
인생에 의미를 찾고 싶다면 기억하는 자아,그러나 경험하는 자아라고 해서 무의미하지 않고
기억하는 자아라고 해서 의미로 충만하지는 않습니다.참으면 병난다고들 말하죠?
우리 자신의 욕망을 너무 억압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그러나 모든 빗장을 다 풀고 길가는 사람들을 칼로 찌르고 강간하는 것도 옳지 않겠죠.
(그러나 파생욕망은 조절하고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좌우는 배제하고 중용의 가치를 생각해봅시다.
다행히 의미 있는 인생과 즐거움을 누리는 인생 그 두 가지는 양립 불가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 두 가지를 다 누릴 수 있습니다.(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최선의 고통-에 언급이 있습니다!
아래는 제 생각입니다.)
제 짧은 인생에서 나온 생각이지만
우리는 우선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에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재단하지 말고 지켜봅시다.
그저 그것을 인지하기만 해도 충분하죠.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회는 어떤 것을 바라고 어떤 방향으로 향하는지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것을 욕망하는지 숙고해봅시다.
그러면 나와 타인의 충돌 지점이 있는데
거기서 나와 타인 사이 갈등 지대를 어떻게 타협할지 생각해 봅시다.당신이 양보할지 아니면 타인의 양보를 요구할지
복종할지 명령할지 협력할지
빼앗을지 선물할지
만약 당신이 세상에 선물한다면 대체로 세상도 당신에게 선물할 것입니다.(-설득의 심리학에서)
나의 욕망을 너무 억압하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돕고 도움받으며, 생의 감각을 누리면서
욕망을 승화시키며, 의미 있는 고통을 감수하며 성장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나름 최선의 삶의 방식이고,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이 저의 삶의 양식입니다.'Read | Write > NTe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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